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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가운 불

컵에 얼음을 채우다 갑자기 생각난 중학생 때의 일화. 그게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인가 그럴 겁니다. 어느 날 문득 엄청난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어요. 저는 그 아이디어에 잔뜩 흥분해서 잊지 않게끔 메모를 휘갈겼죠. 그러고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저와 가장 친한(물론 그 당시 기준으로.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지만 그 친구와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좋지 않게 절교했습니다)그리고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 생각한 친구에게 달려가 말했죠.

 

"석유를 얼린 다음에 불을 붙이면, 존나 멋있을 것 같지 않냐!?"

 

그러자 그 친구는 잠시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저를 쳐다봤어요. 그 눈빛을 오해한 저는 답답해하며 말을 이었습니다.

 

"차가운 불덩이를 만들 수 있잖아. 아 진짜 신기하지 않냐?! 차가운데, 불이야!"

 

제가 보기에 친구의 표정은 '그게 왜 멋있을 것 같냐'였는데, 사실은 '그 생각의 어디서부터 잘못인지를 짚어줘야 할까'였어요. 깊은 한숨을 내쉰 그 친구는 제게 '연소의 3요소' 같은 소리를 했는데, 제가 분명히 기억합니다. 연소의 3요소는 그때 당시 중학교 1학년까지의 과학 시간에 배우지 않았어요. 그 친구는 선행 학습으로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, 나는 그걸 몰랐거든요. 혹시 이걸 읽는 분 중에도 연소의 3요소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. 연료와 산소, 그리고 열입니다. 그러니까 차가운 연료에는 연소의 3요소 중 열이 빠지기 때문에 불이 붙지 않는다는 결론이지요. 그 쉬는 시간에 시작해서 하교길까지 친구의 설명은 반복해서 이어졌고, 저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친구의 설명을 이해했습니다.

 

그냥 갑자기 그때 했던 그 멍청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. 차가운 불덩이. 나중에 생각해 보니 고체연료라는 게 있더군요. 차갑지는 않지만 어쨌든 뭐, 고체 상태의 인화성 물질이니…….

 

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으면 좋을지 조금 생각해 봤는데, 만약 제가 노벨화학상을 받았다거나 아니면 뭐 기발한 뭔가를 발명했다면 이게 제법 괜찮은 에피소드가 될 것 같지 않나요? 종종 엉뚱한 생각을 하던 사람이 결국에는 어떤 성과를 얻어 성공하는 일화로 인용될 것 같기도 하고요. 현실은 뭐 이공계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만. 혹시 또 압니까. 나중에 소설가로 이름이 좀 알려지면, 그래서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하게 되면 '예전부터 엉뚱한 발상을 하곤 했지요' 운운하며 분위기를 띄울 수 있을지도요. 사실은 그냥 예전의 제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고백하고 싶었습니다. 지금이라도 딱히 달라진 것 같지도 않지만.

추가) 다음은 어떤 소설 등장인물의 대사이다. 그가 설명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유롭게 서술하시오. "차가운 불입니다. 거기에 달을 담아 마시지요."